시편 88:1-18

오늘 시편 88편의 소제목은 "큰 고독과 죽음에 직면하여 드리는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을 반복해서 읽어보면, 시편 88편의 기도자의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인지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시편은 원래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을 우리말 한글로 번역한 성경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입니다. 번역하였기 때문에 번역상 한계가 반드시 존재합니다. 반복해서 강조 드리지만, 다양한 번역본으로 성경을 읽는 것은 우리의 영성에 결정적인 유익을 줍니다.

제가 새번역 성경으로 시편 88편 14절에서 18절까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전체 다 읽어드리고 싶지만,
너무 길기 때문에...... 기도자의 상황이 어떠한지를 한 번 느껴보시기를 바랍니다. 14절,

14    주님, 어찌하여 주님은 나를 버리시고, 주님의 얼굴을 감추십니까?
15    나는 어려서부터 고통을 겪었고, 지금까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온 몸이기에, 주님께로부터 오는 그 형벌이 무서워서, 내 기력이 다 쇠잔해지고 말았습니다.
16    주님의 진노가 나를 삼켰으며, 주님의 무서운 공격이 나를 파멸시켰습니다.
17    무서움이 날마다 홍수처럼 나를 에워쌌으며, 사방에서 나를 둘러쌌습니다.
18    주님께서 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웃을 내게서 떼어놓으셨으니, 오직 어둠만이 나의 친구입니다.
기도자의 고통과 절망이 얼마나 오래되고 깊었던지, 이 시는 기도의 마무리, 즉 마지막 한 절 조차도 절망적입니다.

18절, 주님께서 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웃을 내게서 떼어놓으셨으니, 오직 어둠만이 나의 친구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시편의 기도들은, 기도의 시작은 절망과 어려움에서 시작하지만, 대개 기도자는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기도하며 찬송하는 중에, 찬송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과거 역사를 돌아보는 중에, 역사 가운데 행하시고, 임재하셔던 하나님을 만나면서 힘을 얻고, 회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 88편의 구도는 다릅니다. 끝까지 고통과 절망을 표현하면서, 마지막 한 절까지, 고통의 절규를 내뱉고 이 시는 마무리 됩니다.

특히 8절, "주님께서는 나의 가까운 친구들마저 내게서 멀리 떠나가게 하시고, 나를 그들 보기에 역겨운 것이 되게 하시니, 나는 갇혀서, 빠져 나갈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라는 부분에서는 욥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극심한 고통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향한 인식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14절부터, 기도자가 경험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14절, 나를 버리시는 하나님,
나에게 얼굴을 감추시는 하나님,
15절, 어려서부터 나에게 고통을 주는 하나님, 지금까지 나에게 고통과 형벌을 주시는 하나님,

16절, 나에게 진노하시고, 무섭게 공격하시는 하나님

17절, 홍수와 같은 무서움으로 나를 삼키시는 하나님

18절,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웃들로부터 떼어 놓으시는 하나님,
오직 어두움과 친구하게 하시는 하나님

극심한 고통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인식이 이토록 극심하게 부정적으로 망가져 버립니다.
시편 88편의 기도자와 같이, 극심한 고통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인식이 어떻게 극도로 일그러지는지에 대해서는, 고 박완서 선생의 ‘한말씀만 하소서’란 책을 읽어보면 너무나 잘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그리스도인 필독서라 생각합니다.

박완서씨의 아들은 참 잘 자라 주었습니다. 엄친아 중에 엄친아였습니다. 엄마가 원하는 것 이상으로 잘 살아주었으니깐요. 결국 서울대학교 의예과를 합격하고, 아들이 25살이 되어 졸업하던 1988년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이 아들은 과로사로 유명을 달리하게 됩니다. 아들을 저 세상으로 보내고 난 이후에 어미의 마음이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지는지,
박완서는 자서전적 소설 ‘한말씀만 하소서’에 그대로 담아내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내 아들을 데려가실 수가 있습니까? 이 아들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 아들이고, 이 아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 아들인데, 이런 사람들 데려 가시다니요?
하나님도 실수를 하시다니요. 실수를 하신다면, 하나님도 아니지요!"

아들을 잃고 난 이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와서 하는 위로의 말을 참으로 듣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참 사랑하셔서 데려가신거라고"

하나님께서 더 사랑하셔서 천국으로 빨리 데려가신 거라고.

하나님 말씀으로 아들을 양육 잘 시켜서, 하나님께서 참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으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빨리 천국으로 데려가버리신다면, 세상에 어떤 엄마가 아들을 말씀으로 바르게 키우겠냐고. 차라리 말씀으로 잘 안키우고 나랑 오래 사는 것이 낫다고 까지 표현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88편의 기도자는 극심한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심히 일그러져 있음도 확인하였습니다.



특히, 이 시는 다른 시와는 달리, 결론 부분이 해피 엔딩이 아닙니다. 끝나지 않는 고통의 절규로 이 기도는 마무리됩니다.

마치, 이 땅에 우리 있는 삶을 그대로 드러내어 보여주는 것 같아, 저는 이 시편이 참 마음에 듭니다.

마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셔야 하고, 믿는 사람은 반드시 병이 고쳐져야 하고, 믿는 사람은 반드시 기도가 응답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바램이지 실제 우리 삶이 아닙니다.
간절히 밤낮 쉬지않고 기도했는데, 병이 고쳐지지 않고 죽는 것이 실제 우리 삶입니다.


그토록 점없이 흠없이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고 박완서 선생과 같이 참척을 당하는 것이 솔직한 우리의 삶입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 욥의 친구처럼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 88편의 기도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섣불리, 아니야! 하나님은 고통을 주시는 분도 아니고! 버리시는 분도 아니고! 진노를 쏟으시는 분도 아니고! 날마다 무서움을 주시는 분도 아니야!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5절,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공감하라는 것입니다.
공감은 그와 같은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compassion이지요.
함께, 같이 고통받는 것을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2: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가까이 계시는 지인이 가족을 잃고 나서, 자신을 더 힘들게 했던 것 또한, 주위 사람들의 위로의 말이었다고 저에게 말해 주셨습니다.
"힘들어 하지마, 남편 가셨잖아!"

이 말이 그렇게 듣기 싫다고 합니다.
이렇게 위로해주는 사람이 너무너무 싫었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지금 힘든 것은, 내 가족이 천국 못갔을 것 같아서 힘든 것이 아니라, 왜 그가 그렇게 젊은 나이에 처자식 다 남겨놓고 죽었어야 하는지, 그리고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든 것은, 그가 천국 못갔을 것 같아서 힘든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그를 이 땅에서 볼 수 없다는 그 한 가지 사실만으로 이렇게 힘들다는 것입니다.

얼마전에 고 박완서 선생과 같이, 참척을 당하신 분이 저에게 해 주신 말입니다.
이 분을 가장 힘들게 하는 말들은, "자식 떠난지가 몇 년이 됐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 아직도 이렇게 힘들어 하면 어떻하냐, 천국 갔잖아! 이제는 일어서야지!" 라는 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저에게 이런 말을 덧붙이셨습니다. "목사님, 자기도 저처럼 이렇게 자식을 먼저 잃어 보라지요. 5년이 아니라 50년이 지나도 어떻게 내 자식 먼저 보냈는데, 다 잊고 잘 살 수 있겠어요?"

오늘도 우리 가까이에는 시편 88편의 기도자와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15절,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고린도전서 12: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섣부른 신앙 권면 보다는, 입을 굳게 닫고, 기도자와 한마음이 되어, 그의 곁에 말없이 머물러 주는 것, 이것이 어쩌면 오늘 시편 88편의 기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한가지일지 모릅니다.



욥기서 6장 14절입니다.
내가 전능하신 분을 경외하든 말든, 내가 이러한 절망 속에서 허덕일 때야말로, 친구가 필요한데,
친구라는 것들은 물이 흐르다가도 마르고 말랐다가도 흐르는 개울처럼 미덥지 못하고, 배신감만 느끼게 하는구나.

오늘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들 가운데 충만하길 축원합니다. 아멘.